석봉 한호가 말년에 쓴 글씨
석봉진적첩 石峯眞蹟帖
  • 글씨 한호韓濩(1543~1605)
  • 조선 1602~1604년
  • 종이에 먹과 금니
  • 본관2203
  • 보물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 석봉 한호의 노년 글씨로, 모두 세 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첩에는 한호가 가평군수에서 물러난 1602년부터 흡곡현령으로 있었던 1604년 사이에 쓴 글씨가 실려 있습니다. 검은색이나 감색紺色 종이에 금니金泥로 글씨를 썼으며, 해서·행서·초서의 다양한 서체를 사용했습니다. 세 번째 첩은 흰 종이에 검은 먹으로 도교 경전인 「설상청정경說常淸淨經」을 정갈하게 옮겨 쓴 것입니다. 이 첩은 석봉체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평가되며, 한호의 깊은 서예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원문 및 해석
(1책冊)
(안으로) 그 마음을 보지만 마음에 그 마음이 없고, 밖으로 그 형체를 보지만 형체에 그 형체가 없고, 멀리서 그 사물을 보지만 사물에 그 사물이 없으니, 이 세 가지를 다 깨달아야 오직 공空을 볼 수 있다.
공을 보아도 공이니 공은 공한 것이 없고, 공한 것이 없으니 공한 것이 없는 것도 없고, 공한 것이 없는 것이 없으니 맑아서 항상 고요하다. 고요하여 고요해야 할 것이 없으면 욕망이 어찌 생기겠는가? 욕망이 생기지 않으면 바로 참된 고요함이다. 참으로 항상 사물에 응하고 참으로 항상 성품을 얻어서, 항상 응하는 것이 항상 고요하다면 항상 맑고 고요할 것이다.
이같이 청정하면 점차 진정한 도에 들어가고, 진정한 도에 들어가면 도를 얻었다고 한다. 도를 얻었다고 하나 실제로 얻은 것이 없으니, 중생을 교화하여야 도를 얻었다고 하므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의 도를 전할 수 있다.
위의 글은 「전신합도장全神合道章」이다.
노군께서 말씀하셨다. ”높은 선비는 다툼이 없으나 낮은 선비는 다툼을 좋아하며, 높은 덕은 덕이라 하지 않으나 낮은 덕은 덕에 집착하니, 집착하는 자는 도와 덕에 밝지 못하다. 중생이 진정한 도를 얻지 못하는 까닭은 망령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 망령된 마음이 있으면 곧 그 신이 놀라게 하고, (이하 생략)

(內觀)其心, 心無其心, 外觀其形, 形無其形, 遠觀其物, 物無其物. 三者旣悟, 惟見於空. 觀空亦空, 空無所空, 所空旣無, 無無亦無, 無無旣無, 湛然常寂. 寂無所寂, 慾豈能生? 慾旣不生, 卽是眞靜. 眞常應物, 眞常得性, 常應常靜, 常淸靜矣.
如此淸靜, 漸入眞境, 旣入眞道, 名爲得道. 雖名得道, 實無所得, 爲化衆生, 名爲得道, 能悟之者, 可傳聖道. 右全神合道章.
老君曰, “上士無爭, 下士好爭, 上德不德, 下德執德, 執着之者, 不明道德. 衆生所以不得眞道者, 爲有妄心, 旣有妄心, 卽是(驚其神),
(이하 생략)

(2책冊)
시 지어서 설아에게 맡길 필요 없으니
삼엄하게 늘어선 그대 글씨 아름답네
두보의 시벽은 있어도 시성의 공은 없고*
장욱의 초서와 똑같은 데다 술도 본받네**
사신 동행 천 리 길 지금이 두 번째인데
잠시라도 떨어지면 아무 것도 못하겠네
요즈음 고금에 드문 필법에다 호방하니
명성 얻는 일 늦는다고 의심하지 마오

未用新詩付雪兒
憐君寫出字森離
杜陵癖在功非聖
張旭顚全飮亦師
千里同遊今再遇
暫時若失不相爲
年來古絶又豪放
倂取聲名休怪遲
* 최립 자신을 의미함
** 한호를 의미함

(3책冊)
축경조祝京兆(축윤명, 1460~1526)가 쓴 두소릉杜小陵(두보)의 「추흥秋興」 몇 행은 글씨의 풍골風骨이 힘차게 표현되어, 거의 「추흥팔수」에 나오는 “물결이 하늘에 닿도록 솟구친다”와 “돌고래의 비늘이 추풍 속에 움직인다”는 어구와 웅장함을 다툰다. 잠시 펼쳐보는 사이에 태항산太行山의 산들이 갑자기 분기해 움직이는 것 같으니 통쾌하다. 〈추흥秋興〉
만력 32년 갑진년(1634) 음력 4월 9일 학림현재鶴林縣齋에서 쓰다.

祝京兆書小陵秋興數行, 天骨遒發, 幾與‘波浪兼天’·‘石鯨鱗甲’語爭雄長. 小展視間, 太行諸山, 忽若奔動, 爲之一快. 〈秋興〉
萬曆三十二秊歲在甲辰四月九日, 書于鶴林縣齋.

인문印文 「석봉石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