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 이용이 역대 명필들의 글씨를 모아 만든 서첩입니다. 특히 통일신라 시대의 명필 김생金生의 글씨가 포함된 점이 눈에 띕니다. 또 조맹부(趙孟頫, 1254~1322)의 시문도 많이 실려 있는데, 이는 안평대군이 조맹부의 서체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 첩은 1443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1450년(문종 즉위년) 11월에는 교서관校書館에서 찍은 판본이 왕에게 올려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안평대군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일정 기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 시대의 명필 글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엮은 이 책은 조선시대 최초의 법첩法帖으로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원문 및 해석
근래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단약을 복용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그다지 효과는 없습니다. 대체로 작년과 비교하면 그럭저럭한 정도입니다. 족하는 건강을 돌보는 것을 우선시하기 바랍니다. 편지를 보내자니 슬퍼질 뿐입니다.
지난 여름에 족하가 보내준 공죽장卭竹杖을 받았는데 모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 선비 중에는 노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모두 즉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 족하가 멀리서 보내준 지극한 마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우군장군右軍將軍 왕희지王羲之(303~361)의 해서·행서·초서 필법은 천하 사람들이 그 기묘한 필적을 먼저 본받으려고 하니, 모름지기 전해오는 이 세 가지 서체를 따라야 한다.
을축년(1445) 음력 6월에 비해당匪懈堂이 쓴다.
(足)下問耳. 比者悠悠, 如何可言?
吾服食久, 猶爲劣劣. 大都比之年時, 爲復可可. 足下保愛爲上, 臨書但有惆悵.
去夏, 得足下致卭竹杖, 皆至, 此士人多有尊老者, 皆即分布, 令知足下遠惠之至.
右軍眞行草筆法, 天下先欲踵奇妙迹, 須從三體傳.
乙丑季夏, 匪懈堂題.
인문印文 「청지淸之(안평대군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