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으로 쓴 생일노래
생일가 生日歌
『애일당구경별록愛日堂具慶別錄』 13·14면
  • 글 이현보李賢輔(1467~1555)
  • 편찬 황준량黃俊良(1517~1563)
  • 조선 1551년
  • 종이에 먹
  • 영천 이씨 농암종택(한국국학진흥원 기탁)
  • 보물

이현보는 같은 지역 출신의 퇴계 이황李滉(1501~1570)과 깊이 교유하며 학문적 교류를 나눈 인물입니다. 그는 자연에 은거하는 삶을 노래한 국문 시를 창작하여 국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특히 고향으로 내려가 조용히 말년을 보내는 것을 임금의 은혜로 읊은 「생일가」를 비롯하여 다양한 그의 국문시가들이 『애일당구경별록』에 수록되어 전합니다.

원문 및 해석
생일가
공명이 끝이 있을까 수요는 하늘에 달렸어라
금서띠 굽은 허리에 팔십 봉춘 그 몇 해던가
해마다 오는 날이 또한 임금님 은혜로세

이 시를 지은 이유는 이렇다. 7월 그믐날은 이 늙은이의 생일인데, 자손들이 늘 이날에 술잔치를 베풀어 늙은이를 위로하였다. 신해년(1551) 가을에 특별히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고을의 부로와 사방 이웃 고을의 수령이 함께 모였다. 성대하게 잔치 도구를 배설하고 차례대로 일어나 술잔을 주고받았다. 마침내 취하여 춤을 추게 되자 각자 노래를 불렀다. 늙은이 역시 화답을 하였으니, 이 시는 그때 지은 것이다.

늙은이의 나이는 금년 87세이고,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지낸지도 열두 해가 지났다. 그 만년의 거취와 한가하고 안락한 행적을 이 세 편의 단가短歌(시조)에 다 표현하였으니, 부족하나마 글씨로 써서 스스로 자랑한다.
가정嘉靖 계축년(1553) 청화절(음력 4월) 16일에,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치사한 영양永陽 이모李某가 농암聾巖의 작은 집에서 쓰다.

生日歌
㓛名이 그지 이실가 壽夭도 天定이라
金犀 구븐 허리예 八十逢春 긔몃오
年年에 오나리 亦 君恩ㅣ샷다

右七月晦日, 是翁初度之辰. 兒孫輩每於此日, 設酌以慰翁. 辛亥之秋, 别設盛筵, 郷中父老・四鄰邑宰俱會. 大張供具, 秩起酬酢, 終至醉舞, 各自唱歌, 翁亦和答, 此其所作也.

翁之年今八十七歲, 致仕投閑, 亦過一紀. 其晚年去就, 逸樂行跡, 盡于此三短歌, 聊書以自誇云. 嘉靖癸丑, 清和節旣望, 崇政致仕, 永陽李某, 書于聾巖小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