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으로 전래된 명나라 초서 병풍
초서 草書
  • 장필張弼(1425~1487)
  • 중국 명明 15세기
  • 종이에 먹
  • 개인소장(충재박물관 기탁)
  • 보물

16세기 전반, 중국 명나라 서예가 장필의 글씨가 조선에 전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한 초서 작품입니다. 이 병풍은 문신 충재冲齋 권벌權橃이 사행 시에 북경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획마다 움직임이 강하고, 화면 전체에 리듬감과 생동감이 살아 있습니다. 이런 장필의 초서풍은 조선의 서예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자암 김구金絿, 고산 황기로黃耆老 등과 같은 16세기 조선의 대표적 초서 명필들이 장필의 필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서풍을 발전시켰습니다.

원문 및 해석
(1폭)
한가하여 일마다 차분하지 않은 것 없어
잠을 깨니 동창에 해가 이미 붉게 떴네
만물을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다 만족해
네 계절의 좋은 흥취 사람과 다 똑 같네
형체 있는 천지 밖으로도 도는 다 통하고
변화하는 바람과 구름에 대해 생각하네
부귀해도 분수 알고 빈천해도 즐거우니
남아가 이렇게 살면 이게 바로 호걸이네
동해옹
閒來無事不從容
睡覺東窓日已紅
萬物靜觀皆自得
四時佳興與人同
道通天地有形外
思入風雲變態中
富貴不淫貧賤樂
男兒到此是豪雄
東海翁

(2폭)
큰길엔 향기 나고 새벽 하늘 밝아오니
푸른 산 그림 같은데 그대까지 만났네
교룡 숨은 밝은 달은 한 조각 물이고
명마 갇힌 맑은 허공엔 백 척의 구름
인척 마을은 옛날 부마 하안 알아주고
시인으로는 지금 참군 포조 알아주네
양춘은 본래 안개와 구름의 곡조이니
꽃밭에 앉아서 차례대로 들어보아야지
동해옹
紫陌塵香曙色分
碧山如畫又逢君
蛟藏明月一片水
驥鎖晴空百尺雲
戚里舊知何駙馬
詩家今識鮑參軍
陽和本是烟霄曲
須向花間次第聞
東海翁

(3폭)
명나라 장동해張東海는 이름이 필弼이고 자는 여필汝弼로 화정華亭(현재의 상하이 쑹장松江) 사람이다. 초서가 신묘하여 천하 사람들이 글씨가 웅위雄偉하다고 한다. 우리 선조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이 가정 기해년(1539)에 사명使命을받들어 연경燕京(현재 베이징)에 갔다가 이 글씨를 사서 돌아와 장황하여 족자로 만들어 자손들의 보배로 삼았다. 족자는 세월이 오래되자 옆으로 갈라져 장차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다시 의논해 보니 족자로 만들면 그림을 접을 때에 예전처럼 옆으로 갈라질 것이 분명하였다. 부득이 배접을 하여 하나의 큰 첩으로 만들었다. 길이가 3~4척 되었는데 묵적이 아직도 생생하여 마치 비바람이 몰아치고 용과 뱀이 날아오르는 듯하였다. 그 변화하는 움직임이 신의 경지에 들어 거의 다른 사람의 필력으로는 미칠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그림을 대하노라면 오히려 그의 풍신風神(풍모)과 기개를 접하는 것과 방불하니, 참으로 세상에 드문 기이한 보배라 하겠다.
인물고人物考를 살펴보니, 공은 성화 연간(1466)에 진사를 하였는데 당시 재상의 비위를 거슬러 외직으로 나가 남안부南安府(현재의 장시성 다위大餘)를 다스렸다. 법도에 맞지 않는 사당을 없애고 사당을 건립하여 당송唐宋의 현인들을 제향하여 교화를 진작하고 행실과 도의를 숭상하였다. 문장으로 일가를 이루고 언어는 학문에 바탕하여 충실하였다. 필묵의 여기는 한 시대의 으뜸이 될 만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겼으니 하늘에서 재능을 온전하게 타고난 것을 알 수 있다. 이 분의 진묵眞墨(진적)은 동방 우리나라에 전혀 없다. 지금 근 3백 년이나 시간이 지났으니 그 자획을 어찌 더욱 귀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임진년(1712) 음력 5월 어느 날에 영가永嘉 권두인權斗寅(1643~1719)이 쓰다.
명나라 말 목재牧齋 전겸익錢謙益(1582~1664)은 인물을 품평할 때 아주 신중하게 인정하였다. 그런 그가 여필을 두고 이렇게 칭찬하였다.
“남안부로 나가 자신을 단속하고 백성들을 사랑해 크게 민심이 화평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벼슬을 그만두었다. 어려서부터 초서를 잘 썼다. 괴이하고 웅장하며 시원스럽게 글씨를 써서 한시대를 진동하였다. 동해의 이름이 마침내 외국에까지 퍼졌다.”
그가 칭찬한 것이 이와 같다.
갑진년(1724) 음력 3월 상순에 영가 권두경權斗經(1654~1725)이 쓰다.

皇明張東海, 名弼, 字汝弼, 華亭人. 草書妙, 天下稱書雄.
先祖忠定公, 嘉靖己亥, 奉使如燕京, 購得以歸, 粧爲簇子, 爲子孫寶. 簇歲久橫裂, 將不能保全, 更謀作簇, 則摺疊之際, 依舊橫裂無疑, 不獲已禙, 作一大帖. 長幾三四尺, 墨跡尙新, 如風雨驟而龍蛇騰, 變動入神, 殆非筆力可及. 對此, 猶可彷彿其風神氣槩, 眞曠世奇寶也.
按人物考, 公登成化進士, 忤時宰, 出知南安府, 毀淫祠, 建祠, 祀唐宋諸賢, 振勵風化, 敦尙行義. 文章成一家, 言充以學問, 筆墨餘技, 又能冠一代而名後世, 足見得之天者全. 此翁眞墨蹟, 吾東方絶無, 距今已近三百年, 其字畫, 豈不益可貴重也哉?
玄黓執徐, 蕤賓月日, 永嘉 權斗寅識.
明末錢牧齋謙益, 評品人物慎許可, 其稱汝弼, 有曰 : “出南安府, 律己愛物, 大得民和, 未久致仕. 少善草書, 怪偉跌蕩, 震撼一世, 東海之名, 遂流布外國.” 其稱述如此. 歲甲辰暮春上澣, 永嘉 權斗經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