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굽이 물길을 따라 수양하다
무이구곡도 武夷九曲圖
  • 이성길李成吉(1562~1621)
  • 조선 1592년
  • 비단에 먹
  • 덕수2216

중국 송나라 주희朱熹(1130~1200)가 머물렀던 무이산武夷山의 아홉 굽이 물길을 그린 그림입니다. 계곡은 1곡부터 9곡까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며, 1곡이 하류, 9곡이 상류에 해당합니다. 각 굽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경치를 배치하였습니다. 배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여정은 인간의 본성을 되찾고자 하는 수양의 길로 비유되는데, 이는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한 주희의 삶을 동경한 당시 사대부들의 이상과 내면을 반영한 그림입니다.

원문 및 해석
(권두卷頭)
고산구곡가 高山九曲歌
고산의 아홉 굽이 연못을 高山九曲潭
세상 사람들이 모르더니 世人未曾知
내가 와 터 잡고 집 지으니 誅茅來卜居
벗들이 모두 모여드네 朋友皆會之
예서 무이산을 상상하고 武夷仍想像
주자를 배우는 게 소원 所願學朱子
일곡은 어디런가 一曲何處是
관암에 햇빛이 비치네 冠巖日色照
들판에 안개 걷힌 뒤에 平蕪煙斂後
먼 산이 정말 그림같네 遠山眞如畫
소나무 숲에 술동이 놓고 松間置綠樽
벗 오기를 오래 기다리네 延佇友人來
이곡은 어디런가 二曲何處是
화암에 봄 경치 무르녹네 花巖春景晚
푸른 물결에 산꽃을 띄워 碧波泛山花
저쪽 들판으로 흘려보내네 野外流出去
명승지를 사람들이 모르니 勝地人不知
이렇게 알리는 게 어떠리 使人知如何
삼곡은 어디런가 三曲何處是
푸른 병풍에 잎이 피어났네 翠屏葉已敷
녹음진 나무 산새가 와 있어 綠樹*有山鳥
위와 아래 오르내리며 우짖네 上下其音時
반송에 맑은 바람 불어오니 盤松受淸風
여름에도 더위를 전혀 모르네 頓無夏炎熱
사곡은 어디런가 四曲何處是
송애 서쪽 저녁해 넘어가네 松崖日西沈
연못에 바위 그림자 비추니 潭心巖影倒
온갖 빛이 모두 잠겨 있네 色色皆蘸之
산수 경치 깊을수록 좋으니 林泉深更好
그윽한 흥 금하기 어려워라 幽興自難勝
오곡은 어디런가 五曲何處是
은병이 가장 보기 좋구나 隱屏最好看
물가에는 정사가 서 있어 水邊精舍在
맑고 상쾌한 멋 무한하네 瀟灑意無極
예서 항상 학문을 익히고 箇中常講學
달과 바람 노래하고 읊네 詠月且吟風
육곡은 어디런가 六曲何處是
조계의 물가가 널찍하네 釣溪水邊闊
사람과 물고기 중에서 不知人與魚
누가 더 즐거워 하는가 其樂孰爲多
황혼에 낚싯대를 메고서 黃昏荷竹竿
달빛만 지고서 돌아오네 聊且帶月歸
칠곡은 어디런가 七曲何處是
풍암에 가을빛이 곱구나 楓巖秋色鮮
맑은 서리가 살짝 내리니 淸霜薄言打
절벽이 참으로 비단같네 絶壁眞錦繡
찬 바위에 홀로 앉아보니 寒巖獨坐時
잠시 귀가갈 생각도 잊네 聊亦且忘家
팔곡은 어디런가 八曲何處是
금탄에 달이 한창 밝구나 琴灘月正明
옥 안족이와 금실 줄 금을 玉軫與金徽
그저 두서너 곡조 연주하네 聊奏數三曲
옛 곡조 아는 사람 없어도 古調無知者
혼자 즐긴들 무슨 상관인가 何妨獨自樂
구곡은 어디런가 九曲何處是
문산에 한 해가 저물어가네 文山歲暮時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돌이 奇巖與怪石
눈 속에 그 모습 묻혀 있네 雪裏埋其形
구경꾼은 자신이 오지 않고 遊人自**不來
공연히 좋은 경치 없다 하네 漫謂無佳景

오른쪽은 율곡의 시이다. 右栗谷詩
* 樹: 원문은 ‘水’이다.
** 自 : 원문은 ‘目’이다.

인문印文 「판독불가」 「난사蘭史」 「도화유수소교동桃花流水小橋東」
(그림 안)
만력 20년 임진년(1592) 창주 이성길
萬歷二十年壬辰 滄洲李成吉

인문印文 「창주滄洲(이성길의 호)」 「이성길인李成吉印」
(권미卷尾)

정사에서 한가롭게 지내면서 지은 무이도가 10수
무이산 위에는 신선이 살고 있고 산 아래엔 찬 냇물이 굽이굽이 맑아라. 그 속의 멋진 경치 아시고 싶거들랑 뱃노래 두세 가락 한 가히 들어 보소.
일곡이라 냇가에서 고깃배에 올라타니 만정봉 그림자가 맑은 시 내에 잠겼어라. 무지개다리 끊긴 뒤로는 소식도 알 길 없이 일만 골짜기 일천 바위가 푸른 연무에 갇혔도다.
이곡이라 우뚝 서 있는 옥녀봉이여. 꽃 꽂고 물 굽어보며 누굴 위 해 화장했는가. 도인에게 황량한 양대의 꿈이 다시 있을 리야. 흥 이 돋는 것은 앞산의 몇 겹 운무일 뿐.
삼곡이라 산에 걸려 얹혀 있는 배를 보소. 모를레라 노 멈춘 지 몇 몇 해이런고. 뽕밭이 바다가 되는 변화 몇 번이었던가? 부서지는 파도와 바람 앞 등불 같은 인생 감히 스스로 아끼리오.
사곡이라 동쪽 서쪽 두 개의 돌바위 산, 산꽃은 이슬 드리우고 바 위는 검푸른 모포로세. 새벽닭도 울었건만 사람은 보이지 않고 빈 산엔 달빛 가득 못에는 물이 가득.
오곡이라 산이 높아 구름 기운 깊은 속에 어느 때나 안개비가 평 원의 숲에 자욱하네. 숲 속의 나그네를 알아보는 사람 없이 뱃노 래 가락 속에 만고의 시름 깊네.
육곡이라 푸른 병풍이 푸른 물굽이 에워싸고 띠집에는 종일토록 사립문이 닫혔어라. 객이 와서 배를 띄우니 산 꽃만 떨어질 뿐 원 숭이와 새도 놀라지 않는 속에 봄 뜻이 한가해라.
칠곡이라 배를 옮겨 벽탄으로 올라가서 대은병산大隱屛山 선인장仙 人掌 봉우리 다시금 돌아보네. 어여뻐라 지난밤 산꼭대기에 뿌린 비여, 불어난 저 폭포는 몇 갈래로 차갑게 떨어질까.
팔곡이라 바람과 연무 그 형세 곧 갤 듯, 고루암 아래로는 계곡물 이 휘돌아 나가네. 이곳에 멋진 경치 없다고 하지 마오. 단지 노니 는 이들이 올라오지 않을 따름.
구곡이라 막다른 골에서 눈이 활짝 트이나니 뽕과 삼이 우로에 젖 어 평평한 들판에 보이도다. 어랑은 도원의 길을 다시금 찾았다만 오직 인간 세상 속에 별천지가 있는 것을.

이 작품은 회암 주희의 시이다.
精舍閒居戱作武夷擢*歌十首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欲識箇中奇絶處 擢歌閒聽兩三聲
一曲溪邊上釣船 幔亭峯影蘸晴川 虹橋一斷無消息 萬壑千巖鎖翠煙
二曲亭亭玉女峯 揷花臨水爲誰容 道人不復陽臺夢 興入前山翠幾重
三曲君看架壑船 不知停擢幾何年 桑田海水今如許 泡沫風燈敢自憐
四曲東西兩石巖 巖花垂露碧㲯毿 金雞叫罷無人見 月滿空山水滿潭
五曲山高雲氣深 長時烟雨暗平林 林間有客無人識 欵乃聲中**萬古心
六曲蒼屛遶碧灣 茅茨終日掩柴關 客來倚擢巖花落 猿鳥不驚春意閒
七曲移船上碧灘 隱屛仙掌更回看 却憐昨夜峰頭雨 添得飛泉幾道寒
八曲風煙勢欲開 鼓樓巖下水縈洄 莫言此處無佳景 自是遊人不上來
九曲將窮眼豁然 桑麻雨露見平川 漁郞更覓桃源路 除是人間別有天
右朱晦菴詩

* 擢 : 주희의 『회암집晦菴集』에 수록된 같은 글에 ‘櫂’로 되어 있어 본래 이 글자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擢’로 된 판본이 적지 않을 뿐만 아 니라 이 글자에도 동일한 뜻이 있고 글쓴이가 일관되게 이 글자를 쓰 고 있어 글자를 수정하지 않는다. 이하 같은 글자는 이에 준한다.
** 聲中 : 원문은 ‘一聲’이다. 『회암집』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遶 : 원문은 ‘繞’이다. 의미가 통하는 글자이지만 『회암집』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洄 : 원문은 ‘廻’이다. 의미가 통하는 글자이지만 『회암집』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인문印文 「청담여수淸淡如水」 「난사蘭史」 「도화유수소교동桃花流水小橋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