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부터 ‘어촌에 지는 저녁노을’, ‘소상강에 내리는 밤비’, ‘모래에 내려앉는 기러기’, ‘먼 포구에서 돌아오는 배’, ‘안개 낀 사찰의 저녁 종소리’, ‘동정호의 가을 달’, ‘맑게 갠 산시 풍경’, ‘겨울 강에 내리는 저녁 눈’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병풍으로 장황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배열과 달라졌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주로 안견파安堅派 화풍으로 그려졌는데, 한쪽으로 치우친 화면 구성, 겹겹이 후퇴하는 봉우리, 공기원근법을 활용한 깊이감 있는 공간 표현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5폭의 ‘안개 낀 사찰의 저녁 종소리’에서는 미점과 수평 구름 묘사가 두드러진 미법산수米法山水의 영향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전시기간: 2025년 6월 10일 ~ 7월 20일
원문 및 해석
어촌에 지는 저녁노을 漁村落照
낭떠러지 조수 흔적에 묵은 풀 남았고 斷岸潮痕餘宿莽
해오라기 머리 묻고 가려운 날개 긁네 鷺頭揷翅閑爬癢
구리 소반 비친 모습 물결 안이 밝고 銅盤倒影波底明
물에 잠긴 푸른 하늘 둘이 서로 같네 水浸碧天迷俯仰
귀가하는 어부 삿갓 갈매기 무심하고 歸來蒻笠不驚鷗
한 척의 조각배 노을 진 물결 가르네 一葉扁舟截紅浪
어롱엔 물고기 가득 단지엔 술이 가득 魚兒滿籃酒滿甁
혼자 저녁 바람 지고 푸른 그물 거두네 獨背晩風收綠網
소상강에 내리는 밤비 瀟湘夜雨
강마을에 밤이 되자 가을 구름 짙으니 江村入夜秋陰重
작은 주막 고기잡이 등도 얼려고 하네 小店漁燈光欲凍
쏟아지는 빗줄기 너른 호수에 가득하고 森森雨脚跨平湖
만 점의 물결은 날아갈 듯 출렁거리네 萬點波濤欲飛送
대숲이 서걱대니 구슬 부수는 소리 나고 竹枝蕭瑟碎明珠
연잎이 뒤척이니 수은 방울이 달아나네 荷葉翩飜走圓汞
쪽배에서 새벽까지 봉창 닫고 있노라니 孤舟徹曉掩篷窓
거센 바람 불어 와서 고향 꿈을 깨우네 緊風吹斷天涯夢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 平沙落鴈
가을 하늘 아득하고 호수 물결 푸른데 秋容漠漠湖波綠
비 온 뒤 모래톱은 푸른 구슬 펼친 듯 雨後平沙展靑玉
두어 행렬 기러기는 어디에서 날아왔나 數行翩翩何處鴈
강 저편서 기럭기럭 울면서 따라가네 隔江啞扎鳴相逐
청산 그림자 차갑고 낚시터 비어 있고 靑山影冷釣磯空
휘이익 부는 바람 잎 진 나무 흔드네 浙瀝斜風響疏木
추위에 놀랐는지 하늘 높이 날지 않으니 驚寒不作戛天飛
갈대꽃 무성한 곳 잠잘 데를 생각하리 意在蘆花深處宿
먼 포구에서 돌아오는 배 遠浦歸帆
넓고 넓은 호수 물결 봄에 더욱 넓은데 萬頃湖波春更闊
미풍도 불지 않아 유리처럼 미끄럽네 微風不動琉璃滑
강가의 높은 누대 멀리 구름 위로 솟았고 江上高樓逈入雲
난간에 기댄 유객 전망 씻은 듯이 맑네 憑欄客眼淸如潑
언뜻 노 젓는 소리에 새 소리 들리더니 俄聞輕櫓鳧鴈聲
어느새 외로운 배가 하늘 끝에 떠 있네 頃刻孤帆天一末
새들이 사라진 곳에 물이 하늘을 삼키고 飛禽沒處水呑空
홀로 맑은 햇살 속에 터럭 하나 서 있네 獨帶淸光橫一髮
안개 낀 사찰의 저녁 종소리 煙寺暮鐘
안개 끼어 어두운 숲 저녁 까마귀 깃들고 煙昏萬木棲昏鴉
먼 산엔 금빛 연꽃 산봉이 잘 안 보이네 遙岑不見金蓮花
두어 번 저녁 종소리에 절 자리를 알겠고 數聲晩鍾知有寺
까마득한 누대는 저녁노을 저 너머 있네 縹緲樓臺隔暮霞
맑은 종소리 저편 강마을로 퍼져가는데 淸音裊裊江村外
물 잔잔하고 찬 날씨라 더욱 멀리 들리네 水靜霜寒來更賖
행인이 종소리 듣고 머리 한 번 돌려보니 行人一聽一回首
운무가 자욱한 곳에 조각달이 비껴 있네 杳靄濛濛片月斜
동정호의 가을 달 洞庭秋月
눈 가득한 가을 풍광 무더위 씻어주니 滿眼秋光濯炎熱
풀잎에 맺힌 이슬 구슬을 엮어 놓은 듯 草頭露顆珠璣綴
강에서 항아가 씻고 나오니 달빛 차갑고 江娥浴出水精寒
물빛은 은하수와 겨루어도 너무도 맑네 色戰銀河更淸絶
물결 안의 찬 그림자 잡을 수는 없지만 波心冷影不可掬
하늘가 뜬 달이야 어찌 차마 없어질까 天際斜暉那忍沒
두둥실 뜨는 듯 맑은 바람 살갗에 닿아 飄飄淸氣襲人肌
푸른 난새 몰고 하얀 달에 가보고 싶네 欲控青鸞訪銀闕
맑게 갠 산시 풍경 山市晴嵐
푸른 산은 구부러져서 가인의 눈썹 같고 靑山宛轉如佳人
구름은 여인의 쪽머리 노을은 입술 같네 雲作香鬟霞作脣
다시 뿌연 산 기운에게 눈 화장 배워주니 更敎橫嵐學眉黛
봄바람에 일부러 서시의 찡그림 따라하네 春風故作西施嚬
아침에는 햇살 따라 걷히어 사라졌다가 朝隨日脚卷還空
저녁에 성긴 숲 근처에서 풍경을 돋우네 暮傍疎林色更新
유람객이 언덕 너머는 다 볼 수 없으니 遊人隔岸看不足
두 눈에 성시의 모습을 다 담지 못하네 兩眼不博東華塵
겨울 강에 내리는 저녁 눈 江天暮雪
강 위의 먹구름 수묵을 엎지른 듯하더니 江上濃雲飜水墨
바람 따라 눈송이 힘없이 툭툭 떨어지네 隨風雪點嬌無力
난간에 의지해도 까마귀 모습 안 보이고 憑欄不見昏鴉影
수많은 나무 배꽃 피어 갑자기 봄 되었네 萬樹梨花春頃刻
어옹의 삿갓에는 찬바람 소리 지나가고 漁翁蒻笠戴寒聲
장사꾼의 목란 배는 지체하는 행색이네 價客蘭橈滯行色
절뚝이는 나귀 탄 맹호연을 제외하고는 除却騎驢孟浩然
이들 중에 시심을 아는 사람 없으리라 箇中詩思無人識
위의 시는 한림 진화陳澕의 「팔경시八景詩」인데 이군李君을 위해 그림
병풍에 글씨를 써넣었다. 만력 갑신년(1584) 음력 4월 1일 남창南窓.
右陣翰林澕八景詩, 爲李君而盛書于其畫屛云. 時萬曆甲申孟夏初
吉, 南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