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가족이 금산사 탑을 수리하고 모신 사리장엄
금산사 오층석탑 출토 사리장엄
金山寺 五層石塔 出土 舍利莊嚴
  • 조선 1492년 봉안
  • 금동
  • 금산사 성보박물관

세조의 아들인 덕원군과 만 명이 넘는 신도들이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을 수리하고 넣은 부처와 보살, 사리함 등과 중창 기록입니다. 금산사는 1460년 세조의 시주로 중창이 시작되어 왕실의 지원을 받은 사찰이었습니다. 금산사 탑을 해체할 때에 향기가 나고 장륙상丈六像이 땀을 흘리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왕실 후원 불사에는 이러한 기적이 자주 기록되어 불사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모악산 금산사 오층석탑 중창기
이 절은 가섭불 시대의 옛 터에 태조가 중흥한 제일의 국가 보물 가운데 최고의 선종 사찰입니다. 세월이 지나 절이 기울고 허물어지자, 대력 원년 병오년(766)에 진표 율사가 신도들에게 권선하여 미륵대전 3층 건물을 세우고 장육 삼존불을 주조하였으며, 여러 전각과 건물들도 함께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상법시대 말기 이후로 도술이 흩어져서 마음을 밝히려는 선비들도 인연으로 일어난 번뇌에 헛되이 집착하여 외물의 지배를 당하였으니 착한 일을 행하고 복을 짓는 것마저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 후 경진년과 신사년(1460~1461) 사이에 세조대왕께서 불법을 중흥하시고, 이 옛 선종 사찰을 중수하라는 교지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에 함께 맹약하여 선한 마음을 일으킨 신청, 학허, 축문, 계은, 요명, 각공, 각휴, 각매, 조매, 민휴 등의 여러 스님이 교지를 받들어 신도들에게 권선하였으며, 설법전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전각과 부속 건물 10여 동을 조성하고 단청까지 마쳤습니다.
또한 5층 석탑이 기울어 위태롭게 된 지 오래되었는데, 다행히 때와 사람의 인연이 맞아, 사장 박중연, 사장 김치경, 윤동, 승 해산, 승 요명, 승 백충 등이 덕원군의 뜻을 잘 받들어 권선하고 염불하였습니다. 사장들이 결성한 향도 만여 명 및 선남선녀 천여 명을 모아 함께 선한 마음을 일으켜 귀중한 재물을 시주하였으며 기술자를 고용하고 재료를 구하여 임자년(1472) 9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9월 25일에 탑을 해체할 적에 기이한 향기가 진하게 퍼졌고, 장육불상이 땀을 흘렸으며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에 가득했습니다. 탑 안에서 옛날에 ‘석가여래 사리 5매, 정광여래의 사리 2매(분신사리 2매와 3매)’라고 표시한 유기함에서 사리가 나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절하며 공경했습니다. 이 사리들은 임자년 11월 15일에 다시 탑 안에 봉안하였습니다.
또 요명 스님과 학유 스님이 원불을 조성하여 함께 탑 안에 봉안하였습니다. 이 탑은 옛날 기록에 따르면 태평흥국 4년(979)에 처음 공사를 시작하여 7년 임오년(982)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중창에 참여한 스님, 사장, 화주, 시주자들의 명단을 뒤에 따로 적었습니다.
홍치 5년(1492) 11월에 기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