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품

조선 초 일본에 전해진 고려대장경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 고려 1381년 간행, 조선 15세기 일본 전래
  • 종이에 목판 인쇄
  • 오타니대학도서관

고려 1381년 고려 31대 공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공민왕의 5번째 부인의 남동생인 염흥방廉興邦이 해인사에 있던 목판으로 찍어 펴낸 대장경입니다. 조선 초 일본 무로마치 막부에서 온 사신들은 대장경 인쇄본이나 대장경판을 내려 달라고 자주 요청했습니다. 조선 정부는 왜구倭寇 문제 등 외교 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 이에 응하여 여러 차례 대장경을 내려주었습니다. 이 대장경은 조선 15세기에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전체가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판본입니다.

발문
문하평리사 염흥방廉興邦의 아버지가 나(이색)에게 말하기를, “흥방이 현릉 공민왕(재위 1352~1374)을 진사進士로부터 밀직전공사密直典貢士에 이르기까지 섬겼으니 유학자로서 지극히 영광입니다. 그러니 어찌 보은報恩을 도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래의 가르침을 한 곳에 모아놓은 대장경은 만법을 다 갖추고 있어서 상근기·중근기·하근기 삼근三根의 중생 모두에게 적합하고, 이승이든 저승이든 그 선후를 가리지 않고 범부를 고쳐서 성인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큰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귀의하고 숭상하는 자들이 날로 많아지고, 퍼지고 전해지는 것이 날마다 넓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저 역시 다행히 그 전부를 인출할 수 있다면 현릉의 명복을 추선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저의 마음과 함께하여 재물을 희사하는 사람이 비록 많지만, 저의 아버지인 영삼사사 곡성부원군, 저의 어머니인 진한국대부인 권씨, 장인 판문화칠원부원군 윤공, 전前판서 박공은 희사한 돈이 더욱 많았습니다. 이 일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닥나무를 종이로 만들고, 종이를 경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재물을 희사하고 힘을 다한 사람으로 화장 대선사 상총, 양산 대선사 행제, 보림사 사주 각월, 선동사 사주 달검 역시 저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입니다. 이러한 뜻을 권말에 기록하여 후대의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니 부디 그대는 (발문 쓰는 일을) 사양하지 말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나(이색)는 대답하기를, “저의 돌아가신 아버지 문효공은 현릉이 잠저 시절부터 즉위할 때까지 모셨고, 저는 과거 급제로부터 (현릉을 모시며) 정당政堂의 지위까지 이르렀기에, 저 역시 보은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대장경 1부를 인출하였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이 같고 도모하는 일도 같으므로 사양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창룡蒼龍 신유년(1381) 9월 어느 날,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 삼중대광 영예문춘추관사 한산군 이색이 발문을 쓰다.